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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2015화성시봉사대상 김일곤봉사자 인터뷰

by 화성도인 2016. 1. 23.


김일곤 봉사자를 만났다. 김일곤 봉사자는 2015화성시봉사대상을 수상하였다.

봉담읍 빌라단지 내의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후2시경 카페를 찾으며 걸어오는 봉사자를 마중하였다. 새로 생긴 카페라 찾기 힘들어 이미 한차례 통화 한 터였다.

수수한 복장의 첫 인상은 여느 아저씨와 다르지 않았다.

차를 시킨 후 여유로운 오후의 담소를 시작했다.

“선생님은 모르시겠지만 이미 뵌 적 있어요.”

“아, 그래요?”

“네, 작년 어린이날에 우리꽃식물원에서 풍선아트 봉사 하셨잖아요? 그 때 취재 나갔거든요. 엄청 바쁘셨죠?”

“아, 바빴죠”

“풍선 많이 만드셨죠? 줄이 길었는데.”

“네, 손이 많이 아팠어요.”

어색한 분위기를 가벼운 이야기로 환기 시켰다.

이윽고 준비해간 질문을 던졌다.

“대상 수상하셨는데, 봉사를 많이 하시나 봐요.”

“꼭 그렇지는 않고 시간이 맞으면 해요.”

지금까지 집고쳐주기, 장애우어린이집,이동목욕,보건소행사지원,발마사지,풍선아트 등 다양한 봉사를 했고 하고 있다고.

“시간만 맞으면 가리지 않고 했어요.”

봉사를 하게된 계기를 물었다.

“6년전쯤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 이후로 시작하게 됐죠.”

구체적으로 물었다.

“불효자였어요. 그 때 왜 그랬는지 몰라요. 그렇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엄청 후회했어요. 6개월 동안 밥도 안먹고 피폐한 생활을 했지요. 입원까지 했어요. 그러다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어 뭘 할까 찾게 됐어요.”

“그러면 다른 일도 많았을 텐데요.”

“살아 온 날을 뒤돌아 보았죠. 제가 도움을 많이 받았더라구요. 그걸 갚고 싶은데, 가진 게 없잖아요. 그래서 몸으로 할 수 있는 거라 하게 됐죠.”

그리고 처음 시작 때를 회상하였다.

“처음 했던 봉사가 지역 내 소외 아동들을 돌봐주는 곳이었어요. 그 곳에서 저금통을 나워준 적이 있었는데, 저금통에 스티커 붙이는 거 였지요. 하면서 ‘아, 이런 것도 봉사구나’했죠.”

기억에 남는 일도 얘기해 주었다.

“장애우 어린이집 봉사는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아이들이 많다 보니까 선생님이 다 돌 볼 수 없잖아요. 그래서 봉사자들이 중증 아이들은 한명씩 돌봐야 돼요. 잠깐이라도 놓치면 금방 사라져요. 얘들은 무조건 앞만 보고 가요. 빠르기도 얼마나 빠른지. 한번은 아이들한테 바다를 보여 주려고 대천해수욕장에 갔어요. 근데, 한 아이가 바다 속으로 계속 걸어 들어 가는거예요.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선생님들도 쫓아 들어가고 점프해서 겨우 붙잡았죠.”

하며 아찔한 순간을 떠올렸다.

“지금은 익숙해지기도 하고 스킬도 생겨서 예전처럼 힘들지 않아요. 요즘은 오히려 아이들을 보고 오면 힐링이 돼요.”

어린이집 봉사는 한달에 두번 금요일에 고정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방문 날짜가 달라질 수 있어서 매 주 금요일을 아예 빼놓는다고.

어린이집 봉사는 5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이동목욕 봉사도 한달에 두번 나가요. 처음에는 봉담 지역만 했어요. 근데, 남자 봉사자가 적다 보니 다른 지역도 나가게 됐어요. 저희가 나가면 너무 좋아하세요. 어르신이나 몸이 불편하신 분들은 혼자 못 씻으시다 보니 저희만 기다리세요. 15일만에 씻으시는 거니 얼마나 좋겠어요. 근데, 건강이 않좋으시다 보니 다음에 찾아가면 돌아가신 경우가 있어요. 마지막으로 씻겨 드렸던 거죠.”

하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에 가슴이 찡해졌다.

일주일에 2,3일을 봉사로 보내는데, 일은 언제 하는지 물었다.

“돈이 많이 필요하지 않아요. 책임질 처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집도 임대고 차도 없으니”

짐짓 놀랐다. 세상 모든 돈을 벌기 위해 태어난 것 처럼 긁어 모으는 것이 사람 아닌가.

그리고 이런 말을 남기고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

“정말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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